신용회복경험담

2025.04.30 13:14

늦은 나이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

  • 최고관리자 22일 전 2025.04.30 13:14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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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도입부: 채무 발생 전의 일상적인 삶 (약 300자)

59살, 저는 한때 30년 가까이 같은 공장에서 일했던 평범한 노동자였습니다. 퇴직 후에는 아내와 함께 작은 텃밭도 가꾸고, 성인 자녀 둘은 각자 삶을 살아가고 있었죠. 아내와 여행 한번 제대로 못 다녀본 인생이지만, 그래도 건강히 퇴직하고 하루하루를 버는 게 고맙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. 퇴직금을 조금씩 아껴쓰며, 창고 정리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이어가던 어느 날까지는요.



 

2. 전개: 채무 발생과 악화 과정 (약 500자)

퇴직 후 돈을 조금이라도 불려보겠다는 욕심이 화근이었습니다. 지인이 소개한 ‘고수익 투자’라는 말에 혹해 적지 않은 돈을 넣었고, 얼마 안 가 연락이 끊겼습니다. 그러고 얼마 후, 보이스피싱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. 은행 사칭 전화였고, 대출 조회를 막겠다며 OTP 비밀번호를 요구했죠. 잠깐의 방심이었고, 제 명의로 대출이 여러 건 나갔습니다.
그렇게 생긴 채무가 총 9,200만 원. 저축은행 두 곳과 대부업체 두 곳에서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. 원금보다 이자가 더 커졌고, 아르바이트 수입으로는 감당이 불가능했습니다. 매달 수백만 원씩 독촉 연락이 왔고, 정신적으로도 크게 무너졌습니다. 가족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으며 밤잠을 설친 날이 셀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.



 

3. 위기: 개인회생 결심까지의 상황 (약 400자)

결국 아내에게 모든 걸 털어놓았습니다. 아내는 놀라면서도 “이제부터라도 같이 해결하자”고 말해줬고, 그게 오히려 저를 살렸습니다. 개인회생이라는 제도를 인터넷에서 처음 알게 되었고, 신청까지는 약 두 달간 고민했습니다.
‘내가 이런 절차를 밟아야 하나’ 자책도 했고, ‘이 나이에 무슨 회생이냐’는 회의도 들었죠. 그러나 계속 이 상태로 가면 가족 모두가 고통받을 것 같았고, 어렵게 상담을 받게 됐습니다. 처음 상담실 문을 열던 날, 손이 덜덜 떨렸고 자존심이 땅에 떨어진 기분이었습니다. 하지만 담당자분은 제 얘기를 편견 없이 들어줬고, 그게 큰 위로가 됐습니다.



 

4. 해결: 개인회생 진행 과정 (약 500자)

서류를 준비하고 법원에 제출하기까지 약 한 달 반이 걸렸고, 그 후 개시 결정이 나기까지 또 한 달 정도 걸렸습니다. 저처럼 고정수입이 적은 사람도 신청이 가능했고, 법원에서는 제 연령과 소득 수준, 채무 사유 등을 고려해 월 21만 원씩 36개월간 갚는 변제계획을 인가해줬습니다.
처음엔 ‘이 돈도 어떻게 모으나’ 걱정했지만, 지출을 철저히 줄이고 아내와 협력해 하나씩 계획을 세웠습니다. 법원에 출석했던 날은 떨렸지만, 판사님의 차분한 질문과 진행이 생각보다 덜 무서웠습니다.
변제 시작 후 1년이 지난 지금, 저는 한 번도 연체 없이 성실히 갚아가고 있습니다. 어렵지만, 숨통은 트였습니다. 채권자들의 독촉도 사라지고, 무엇보다 ‘정리되고 있다’는 느낌에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습니다.



 

5. 결말: 현재의 변화와 희망 (약 300자)

이제 저는 예전보다 훨씬 소박하게 살아갑니다. 외식도 줄이고, 불필요한 소비는 철저히 막고 있습니다. 그래도 아내와 둘이 소소한 일상에 감사하며 살아갑니다.
개인회생은 제게 두 번째 인생을 열어준 제도였습니다. 부끄러워하지 마세요. 이건 회피가 아니라, 책임을 다하려는 용기입니다.
혹시 지금도 독촉전화에 시달리며 밤잠을 못 이루고 있다면, 저처럼 제도의 문을 두드려 보세요. 나이와 상황을 불문하고,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.




 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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